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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이것도 분명 내가 만들어 낸 상상 속 거짓 일거야.‘ 그렇게 몇 번이고 되뇌었다. 하지만 시계에서 흘러나오는 희미한 빛에 비춰진 희미한 그림자는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듯 선명하게 일렁인다. 밖을 자세히 확인해야하다는 생각이 드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.
난 마음을 한번 가다듬고, 천천히 고개를 내밀고 태양이 떠 있어야 할 하늘로 눈길을 돌렸다. 투명한 창에 비춰진 세상은 생각과 다르게 밖은 더욱 더 어두워서 계속해서 쳐다보고 있으니 내가 눈을 뜨고 있는 것인지, 감고 있는 것인지 분간되지 않을 지경이다. 당연히 떠있어야 할 태양이 있어야할 곳을 짐작하여 올려다보았지만 그 자리엔 아주 미약하게 보이는 검고 흐릿한 구체만이 보였다.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기에 내 눈이 어둠에 적응할 때까지 하염없이 그것을 바라봤다. 하지만 계속해서 그것을 바라보고 있으니 마치 올가미가 나의 갈비뼈를 둘러싸 조이는 것처럼 숨이 답답해져 오기 시작했다. 다행히 답답한 기분속에서도 어둠은 점점 내 눈에서 걷혀져 갔고, 어느새 그것의 형체가 조금 더 또렷하게 나에게 비춰진다. 하지만 여전히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전혀 눈치 잴 수 없었다.
난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핸드폰을 집어 들고 빛을 비추어 보았고, 그 빛에 반응하기라도 하는 듯 구체의 중심은 그 빛을 반사하며 미약하게 빛을 머금었다.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희미한 빛을 머금은 그 구체는 생각보다 선명하게 그 형체를 내비쳤고 난 그것이 무엇인지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. 아니 어쩌면 그동안 비현실적인 그 상황을 부정하고 싶었던 것일 수 도.
하지만 더 이상 부정할 수도 없이 ‘그것’은 선명하게 내 눈을 바라보고 있다.
‘안구’, 그것은 거대한 안구였다. 눈꺼풀 사이로 보이는 동공은 마치 나를 응시하고 있는 듯 내려다보았고, 흰자 위에는 붉은 핏대가 울긋불긋하게 올라와 있었다. 난 한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. 머리에선 식은땀이 흘러 나의 목줄기를 타고 등까지 뻗어 나갔으며, 감히 고개를 돌릴 엄두조차 낼 수 없을 정도의 압력이 나를 짓눌렀다. 후회한다. 어리석은 호기심이 나를 고통속으로 끌고 가는구나. 왜 평소처럼 진실에서 도망치지 않았을까? 나 자신의 부주의를 수없이 원망했으나, 내 몸은 이미 죽음의 향기를 느낀 것처럼 세포 하나하나 경련하고 있었다.
숨막히는 정적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온 세상을 휘어 감았다. 그렇게 잠시의 적막이 흐른 뒤, 난 간신히 온몸의 힘을 쥐어짜 눈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. 오랜 시간동안 어둠속에 있었던 탓인지 내 눈은 완전히 어둠속에 적응했고, 그 탓에 보지 못한 창문 밖의 풍경들이 서서히 들어오기 시작한다.
다시금 밝혀진 시야의 모든 것이 검게 칠해진 풍경 속엔 회색 빛을 띄는 두 개의 덩어리가 보였는데, 이내 그들이 사람임을 인지할 수 있다. 그리고 얼핏 보이는 실루엣으로 추정하 건데 한 명은 장발의 여성, 그리고 남은 한 명은 머리를 짧게 깎은 남성인 듯하다. 어둠이 너무나도 짙은 탓에 그 이상 자세히 보이진 않았으나, 이런 기이한 상황 속에서 다른 사람이 보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나름의 진정제가 된 듯 조금은 마음이 안정되었다.
하지만 그것도 잠시, 왜 인지 모르게 그들은 어둠 속에서 공포에 떨고 있는 듯 보였다, 아니 떨고 있었다. 왜 저렇게까지 공포에 떨면서 있을까? 하는 의문이 들던 찰나, 뒤의 여자가 어떤 위험을 감지한 듯 무언가를 감싸 안기 시작했다. 그리고 그와 동시에, 그녀는 마치 투명하고 거대한 송곳이 뒤통수를 관통한 듯 얼굴이 있던 자리에 구멍이 나고, 그 안에 있던 부속물들을 왈칵왈칵 뿜어 대기 시작했다.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파편은 앞의 남자의 얼굴까지 튀어 나갔고, 방금 전 까지만 해도 앞을 바라보고 있던 그의 얼굴은 어느새 몸과 반대 방향으로 비틀어져 있었다. 그의 목은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으며, 그 이후로도 두 바퀴 반이 돌아간 것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천천히 회전하였다. 그의 왼쪽 눈이 있던 검은 구멍에선 빨래가 쥐어 짜이듯 내용물들이 왈칵왈칵 뿜어져 나왔고, 남은 한쪽 눈에선 붉은 핏대가 똑바로 세워졌다. 그의 모습은 누가 봐도 숨이 끊어진 듯 보였지만, 남은 오른쪽 눈은 마치 나를 응시하는 듯 내 쪽을 향해 있다.
지옥, 내 눈앞에 펼쳐진 세상은 가히 지옥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. 하지만 평소와 같이 그것이 상상속의 거짓임을 되 뇌일 필요는 없었다. 오히려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상황을 마주한 나는 그것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기에 그것을 현실이라 받아들이지 못했다. 하지만 몇 번이고 그 사실을 자각해보아도 나를 또렷하게 쳐다보는 의식 없는 시선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선명하다.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눈 앞의 커튼을 굳게 닫고, 아무도 없는 텅 빈 방안으로 시선을 돌렸다. 설령 그것이 진실이더라도 내가 할 것은 여태 살아온 것처럼 세상을 등진 채 살아가는 것뿐, 창 너머에 비춰진 세상은 내가 평소에 바라보던 세상과 별반 다를 것 없기에 무엇이 진실이던 상관없으리.
또다시 이상한 생각이 든다. 차라리 지금이 나에게 남은 시간들 중 제일 행복한 순간일 것이라는, 그런 생각. 난 창문 너머의 세상을 등지고, 다시 창 속의 세상으로 돌아왔다. 다시 돌아온 나만의 작은 세상속에서 난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기로 했다. 그저 냉장고에 남아 있는 술로 배를 채우고, 술기운을 빌려 잠에 들고. 또 다시 일어나면 다시 술을 마시고 다시 잠에 들기 위해 노력했다.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, 나는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.
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, 난 어느새 술을 마실 기운조차 잃은 채 침대에 굳은 채로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. 다만 깨어 있는 신체는 나의 머리 뿐. 내 머리만이 끝없이 생각을 이어가며 움직이고 있다. 다시 문을 열 용기도 없고, 그렇게 할 이유도 찾을 수 없었다. 그동안 내 몸은 어떻게는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 쳤고, 살기위해 나를 생식하는 듯 나의 몸에게 서서히 분해 당하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. 타는 듯한 공복, 그 이상의 고통은 계속해서 내가 여전히 살아있음을 알린다.
두렵다. 나의 몸이 타 들어가는 듯한 고통도, 밖에서 목격한 지옥과도 같은 광경도 두려웠지만, 어느새 나의 눈 바로 앞에 보이는 형의 칠흑같이 텅 빈 오른쪽 눈이 더욱 더 두렵다. 난 네가 원망스럽다. 이 상황에서 까지도 너는 나를 죽이기 위해 나를 미치게 하는 걸까? 나에게 살아가는 것에 의미가 있을까? 아니, 애초에 내가 이토록 살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? 나는 반쯤 울먹이며 그에게 그 이유를 속으로 물었다. 그것은 그 소리를 듣기라도 한 듯 입으로 추정되는 무언가를 뻐끔거리며 나에게 무언가 속삭였다. 또다시 바람이 새는 듯한 기괴한 소리. 하지만 그것을 알아들을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. 나는 다시금 눈꺼풀 속의 세상으로 돌아섰다. 형의 모습이 두려웠던 것도 맞지만 이 순간만큼은 혐오감이 더욱 컸다. 그것의 초점 없는 눈 속에서 그동안 잊어왔던, 그와 마주한 마지막 순간이 겹쳐 보였기에.
사고가 나기 바로 직전, 나는 그의 얼굴을 마주했다. 그 순간 보였던 형의 눈에는 딱 한가지 감정만이 존재했었다. ‘공포’, 공포에 집어삼켜져 나를 데려가려고 했던 형의 비열하고 나약한 모습이 선명하게 기억났다. 만약 트럭이 조금만 방향을 틀었다면 오히려 위험했던 것은 그의 동생이었을 것이고 형이 그 사실에 대해 모를리가 만무했다. 모든 것은 전 부 형의 잘못인데, 왜 남겨진 고통의 잔재는 전부 나의 것 인가. 차라리 죽는다면 더 이상 나를 괴롭히는 소음들도 들리지 않게 되겠지.
나에겐 형에 대한 일말의 동정심마저 사라져간다. 그것을 부러워하며, 동시에 저주한다. 그것이 사라지기를. 내가 받은 고통- 그 이상의 고통 속에서 살아가기를.
그 순간내 머릿속을 계속해서 괴롭히던 그 소음이 내 귀에서 말끔히 사라졌다.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, 귀를 울리는 이명만이 내 귀를 타고 뇌를 울리고 있다. 그것이 사라진 걸까? 긴장이 온몸을 타고 흘렀던 탓에 나는 쉽사리 마음을 놓을 수 없었고, 숨막히는 정적이 계속해서 이어졌다. 아무런 소리도 않는 정적을 깬 것은 어느새 열린 창문을 타고 내 볼을 스친 서늘한 바람이었다. 다시금 느끼는 ‘살아있다’ 라는 감정. 익숙한 감정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저 반가울 뿐. 마음이 한결 놓인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한 뒤 서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. 밖의 세상은 감긴 눈 탓에 선명해지는 중이었지만 내 시야를 메우던 텅 빈 안구는 확실히 보이지 않는다. 나는 가지고 있던 일말의 긴장을 풀어 헤치고, 모든 것이 선명해진 세상을 응시했다. 여전히 어두운 방 안, 창문 너머의 회색 하늘. 분명 죽은 형의 잔상은 사라지고 없었지만, 그의 텅 비어 검은 안구만큼 어둡게 물든 하늘에는 더욱 더 붉어진 거대한 안구가 나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.
그의 눈을 한없이 바라보던 나는, 어느새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.
X월 X일
우리의 행복했던 수많은 추억들은 단 한 번의 사소한 변화로 악몽이 되었다. 그날의 사고가 나에게 남긴 신체적 상처는 빠르게 회복되었지만, 그때부터 나는 이상한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. 사소한 변화에도 나는 마음이 점점 불안해지며 내 눈에는 현실이 아닌 무언가 계속해서 보이기 시작한다. 분명 내 눈 앞에서 죽음을 맞이한 그가 내 눈앞에 나타나기 시작했다. 그는 나에게 죄책감이라도 남기려는 듯 계속해서 나에게 스스로의 죽음을 보여주고 또 보여준다. 어느 날은 두 동강이 난 채로 집 앞 현관에서 나를 기다리는가 하면, 어떨 땐 머리만 남은 채 책상위에서 나를 말없이 응시한다. 침묵만이 맴돌았지만 난 확실히 알 수 있다, 나를 원망하고 있다는 것을.
나는 영적현상을 전혀 믿지 않기에 그 잔상의 감정이 정말 그의 감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. 어쩌면 잠재된 죄책감이 그 모습을 나의 안구 안쪽에서 비춰주는 것일 수 있다. 하지만 확실히 그 광경은 나에게 고통을 주는 것 같다. 차라리 내가 죽었더라면 그 고통이 덜어졌을까?
난 사고가 났던 그 장소를 향해 추억을 그리며 뛰었다. 똑 같은 광경과 똑같은 장소, 그리고 똑 같은 시간. 나의 아름다웠던 추억은 모두 다시금 재생될 수 있겠지만 딱 하나- 내 손을 꼭 붙들고 있던 그 한 사람만큼은 보여 주지 않는다. 내가 만약 일찍 일어났다면, 나는 다시금 오른손을 꼭 붙든 채로 영화관에 도착할 수 있었겠지. 하지만 늦었다.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,달라질 건 없겠지. 상태는 점점 더 심각 해졌고, 나는 점점 현실을 마주하며 사는 것이 버거웠었다. 차라리 그 트럭이 나에게 다가왔었다면, 내가 죽었더라면, 이 고통이 덜하였을까? 계속해서 생각한다. 매일 밤 나는 죽은 그의 모습을 마주하며 존재하지 않는 신에게 질문했다. 내가 대신 죽을 수는 없었냐고, 나를 죽여줄 수 는 없냐고.
그렇게 몇일을 빌었을까, 정직한 내 세상속 신은 내가 원하는 바를 그대로 들어주었다. 몇일 전 눈을 뜨고 마주한 세상 속에는 평소와는 사뭇 다른 것이 보였다. 죽음을 맞이하는 또다른 나 자신의 모습. 나를 죄책감으로 짓누르던 그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어졌지만 더욱 지독함 괴리감이 나에게 다가왔다. 스스로의 죽음, 그것은 죄책감과는 다른 기괴하고 무기력한 공포감. 나와 똑같이 생긴 ‘그것’이 내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.
다시 마주한 의사는 나의 변화한 상태를 부정적으로 바라봤다. 적어도 죄책감에서 벗어난 지금이 나에겐 더 나은 현재라고 생각했는데, 꼭 그렇진 않구나. 의사는 상태가 나아질 때까지 유리잔 같은 위험한 물건들은 나에게서 멀리 두어야 한다는 말과 함께 떠나가셨다. 내 방에선 점점 위험한 물건들이 치워지고 나를 바깥과 연결시켜주던 투명한 유리창마저 커다란 나무판자로 굳게 막혔다. 익숙한 인기척이 사라진 집이 더욱 더 텅 비워져 간다.
나는 내 생각보다 나약한 것 같다. 스스로의 죽음에 대한 원초적인 공포는 나에게 크게 다가왔고, 그 공포감에 어떠한 것도 하지 못한 채 방에 틀어박혀 모든 공포감에게서 회피하는 것만 것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. 이제는 방문 밖을 나가는 것도 두려워졌다. 그저 텅 빈 방 안에서 살기위해 필요한 것들을 문밖에 쌓아 두고 이따금씩 그것들로 삶을 연명해 나가며 최대한 바깥을 마주하지 않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.